
스타트업 퇴사 회고
인턴으로 입사하여 정규직 전환 후 퇴사하기까지
들어가며
아마 이 퇴사 회고는 열 번도 넘게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을 것입니다.
올렸다가 내리고, 처음부터 다시 쓰기를 거듭했습니다.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회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할 만큼, 이 회사는 저에게 애증의 존재였습니다.
처음에는 일대기처럼 쭉 써 내려가기도 했지만 결국 지워버렸고, 지금은 넷플릭스의 퇴사 부검 메일 형식을 빌려 마지막 버전을 남겨봅니다.
왜 떠나는가?
컴포트존을 벗어나고 싶어서
인턴 때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함을 느꼈습니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고 사수님이 성장하기 좋은 업무만을 골라서 배정해주셨습니다. 정규직이 되고 나서는 한 파트를 분담하게 되었고 같은 업무를 반복하다 보니 숙달되어 능숙하게 처리했습니다.
어느 순간 많이 정체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정직원이 되면 더 많은 성장이 있을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리 제가 알아서 성장해야 했고 회사는 더 이상 성장을 떠먹여주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전이 이상하긴했습니다. 회사는 학원이 아닌데 회사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인턴때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성장할수 있는 도전적인 업무없이 매번 간단한 업무가 주어지는 것은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성장을 찾아 나섰습니다. 끊임없이 더 도전하며 컴포트존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간단한 업무속에서도 항상 +@를 고민하고 구현해왔습니다. 기존에 많은 인턴들이 다녀가서 정리되지 않은 컨벤션을 정하고, 프론트엔드 스터디를 만들었으며, 코드 리뷰 문화 개선과 회고를 통해 반복된 업무 속에서도 각자 성장하기를 원했습니다.
이 회사에서 성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하고 경험했습니다. 1년 차 주제에 인턴을 담당하여 가르치기도 하고 인턴 면접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퇴사 말미에는 직접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팀을 꾸려 간단한 업무를 진행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인턴 때와 같은 가파른 성장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주니어 시절에 좀 고생을 하더라도 실패하며 성장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회사는 너무 안정적이었습니다. 돈도 잘 주고 업무도 어렵지 않았지만 성장도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성장이 회사 밖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느낀 순간, 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가 성장시켜주는 곳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로 도전적인 영향을 주며 성장을 갈구하는 환경이 저에게 너무 필요했습니다. 제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걸 알기에 계속 다니면서 그저 그런 개발자가 되는 게 두려웠습니다.
퇴사 유예와 확신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 맞는 결정인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어 마무리할 때까지 계속 고민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회사의 방향과 저의 방향이 맞지 않았고 더 늦으면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점점 확신에 차서 24년 10월에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배운것
깊이 몰두한다는 것
저를 뽑아준 회사가 너무 고마웠고, 인턴 시절 저의 실력이 늘어감이 신기해서, 이 서비스를 정말로 크게 발전시키고 싶었습니다. 이 정도로 몰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서비스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네카라쿠배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초기 서비스에 개발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아직 서비스가 무궁무진하였고, 그렇기에 서비스의 방향성 또한 많이 열려 있었습니다. 저는 퇴근하고 나서도 서비스를 수시로 들여다보면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다른 서비스를 볼 때도 우리 서비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스포츠 관련 서비스였는데,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저였지만 이런 저도 즐겁게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했고 실제로 계정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발견한 에러나 불편한 점, 개선하면 좋을 점들을 정리해서 매일 아침 출근하면 사수님에게 피드백을 구했습니다.
대부분은 반려되었지만, 이 정도로 몰두한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회사가 저를 많이 믿어주었고 사수님도 열려 계신 분이라 자유롭게 생각을 하고 건의할 수 있었고 그런 분위기가 저를 더 몰두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실패도 배움이다
개발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많이 들거나 시간이 많이 들어서 못하는 것뿐이지 구현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푸시 알림을 구현하면서 불가능한 것도 있구나 처음 느꼈습니다.
PWA에서 aab를 추출하여 플레이스토어에 출시한 앱이 있었습니다. 이 앱에서는 웹푸시가 동작하고 있었는데, 이걸 앱푸시처럼 보이게 해달라는 요구사항이 있었습니다. pwa builder 설정을 이리저리 수정하며 테스트를 해보았지만 1주, 2주가 지나도록 해결이 되지 않았고 배포가 되어야 테스트가 가능해서 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결국 3주가 지나서야 불가능하다고 결론 짓고는 pwa builder 개발자에게 문의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구현한 방법으로는 앱푸시처럼 나타나는 게 불가능하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왜 진작 문의하지 않았을까 후회와 함께 그동안의 시간이 많이 아까웠지만 불가능한 업무도 존재하고, 일을 시작하기 앞서 가능 여부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오래 일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사수와 저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1년 정도 차이가 났는데 계속 일하면서 점점 실력이 비슷해지다 못해 따라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담당했던 인턴이 800줄짜리 엉터리 코드를 작성해왔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사수님이 회의실로 불러서 페어 프로그래밍으로 2시간 만에 해결한 것을 보고 이게 바로 경력에서 나오는 문제 해결력인가 감탄했습니다.
저도 일하는 시간이 오래되면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처음 입사해서는 기능 구현에 치중하며 얼마나 더 잘 구현할지에 집중했지만 시간이 흘러서는 기능의 맥락을 보게 되었고 이 기능으로 인해서 어떤 가치를 주는지 찾고 그것에 맞는 구현 방법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기획안을 검토할 때도 단순히 구현 가능성을 넘어 아키텍처에 끼칠 영향을 함께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실력의 성장은 점점 더디게 되었지만 시야는 넓어져서 더 많은 것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성장하는 것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성장에 한계를 느꼈다기보다는 함께 성장할 때의 시너지가 대단했습니다. 각자 잘하는 분야가 다르듯 코드 리뷰를 진행하더라도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리뷰를 하여 새로운 접근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회고 때는 각자 겪은 시행착오를 공유하여 다른 개발자가 같은 문제를 겪지 않고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하게 되어 좋았습니다.
회사에 아쉬운 점
단지 맞지 않았을 뿐
처음에 퇴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회사의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는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냥 회사의 성장 단계와 제가 추구하는 바가 맞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고 저는 계속 개선하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우리 회사가 네카라쿠배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우리만의 서비스를 만들었으면 했지만 회사는 큰 회사를 따라가서 그들이 고민한 시간에 편승하기를 원했습니다.
3일 동안 디자이너분과 함께 고민하면서 결정한 시안이 아닌, 대기업의 것을 차용하기로 결정되었을 때는 합리적인 결정이었지만 많이 아쉬웠습니다.
차등 없는 문화
그리고 좀 더 치열하게 일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이기려면 더 치열하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칼퇴를 장려하고 업무에 정해진 기한도 없으며 성과 인정이 하나도 안되니 열심히 하는 사람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게 합쳐지자 서비스의 발전 속도는 매우 느렸습니다. 오래 다니기에 좋은 회사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아쉬운 회사였습니다.
그냥 이런 유형의 회사도 있는 것이고 단지 저와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치열한 성장으로
그동안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편하게 일했습니다. 이제는 채용시장에서 제가 어떤 가치와 위치를 갖는지 객관적으로 가늠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니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치열한 성장을 위해, 단순히 업무량이 많은 곳이 아니라 회사의 발전을 위해 똑똑하게 일하는 환경에서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또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취업 준비를 하는 만큼 기초를 튼튼히 다지고 싶습니다. 자바스크립트와 리액트의 동작 원리를 깊이 탐구하며 기반을 단단히 쌓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남은 숙제
떠나기 전, 사수님께 앞으로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부탁드렸습니다. 저를 가르치며 느낀 점을 솔직히 말해달라고.
돌아온 피드백은 "싫은 소리를 잘 못하고 금방 떠날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곱씹어 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매일 함께하는 동료들과 마찰을 피하려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넘어간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선을 넘는 부탁에는 거절했지만, 그 기준이 높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극적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제가 풀어야 할 숙제인 것 같습니다.
후회는 없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몇몇 분들은 경기가 좋지 않으니 조금 더 다니다가 옮기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당분간 경기가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결심했을 때 움직이지 않으면 평생 못 나올 것 같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려운 채용시장에서 쉽게 취업하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면접에서 저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AI 시대에 프론트엔드는 어떤 위치에 있을지... 불안하지만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장에서조차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더 빠르게 발전할 AI 시대에는 쉽게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더욱 단단히 준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