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프론트엔드 개발자, 퇴사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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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3월부터 8월까지 인턴십을 진행했고 9월부터 24년 10월까지 1년동안 직원으로 다닌 회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들어가며

아마 이 퇴사회고는 열 번도 넘게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올렸다가 내리고, 처음부터 다시 쓰기를 거듭했다.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회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할 만큼, 이 회사는 나에게 애증의 존재였다.

처음에는 일대기처럼 쭉 써 내려가기도 했지만 결국 지워버렸고, 지금은 넷플릭스의 퇴사 부검 메일 형식을 빌려 마지막 버전을 남겨보려 한다.

왜 떠나는가?

컴포트존 벗어나기

인턴때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함을 느꼈다. 모르는것에 대해서 알게되고 사수님이 성장하기 좋은 업무만을 골라서 배정해주었다. 정규직이 되고 나서는 한 파트를 분담하게 되었고 같은 업무를 반복하다보니 숙달되어 능숙하게 처리했다. 회사에서 주어지는 업무가 크게 어렵지 않았고 에러가 발생하면 문제 부분을 파악해 금방 고쳤다.

어느순간 많이 정체되었다고 느꼈다. 정직원이 되면 더 많은 성장이 있을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리 내가 알아서 성장해야했고 회사는 더이상 성장을 떠먹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성장을 찾아나섰다. 끊임없이 더 도전하며 컴포트존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기존에 많은 인턴들이 다녀가서 정리되지 않은 컨벤션을 정하고, 프론트엔드 스터디를 만들었으며, 코드리뷰 문화 개선과 회고를 통해 반복된 업무속에서도 각자 성장하기를 원했다.

이 회사에서 성장하기 위해 할수 있는 모든것을 시도하고 경험했다. 1년차 주제에 인턴을 담당하여 가르치기도 하고 인턴 면접에 들어가기도 했다. 퇴사 말미에는 직접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팀을 꾸려 간단한 업무를 진행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인턴때와 같은 가파른 성장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니어 시절에 좀 고생을 하더라도 실패하며 성장을 많이 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회사는 너무 안정적이었다. 돈도 잘주고 업무도 어렵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장도 없는 그런곳이었다.

성장이 회사 외적인 부분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낀 순간 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가 성장시켜주는 학교는 아니지만 적어도 서로 도전적인 영향을 주며 성장을 갈구하는 환경은 나에게 너무 필요했다. 내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걸 알기에 계속 다니면서 그저 그런 개발자가 되는게 두려웠다.

퇴사유예 6개월

퇴사를 결심하고나서 맞는 결정인지 계속 고민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어 마무리할때까지 계속 고민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회사의 방향과 나의 방향이 맞지 않았고 더 늦으면 후회할것 같았다.

점점 확신에 차서 24년 10월에 퇴사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배운것

깊이 몰두한다는 것

나를 뽑아준 회사가 너무 고마워서, 그리고 인턴시절 나의 실력이 늘어감이 신기해서, 이 서비스를 정말로 크게 발전시키고 싶었다. 이정도로 몰두할수 있을까? 싶을정도로 이 서비스에 푹 빠져있었다. 네카라쿠배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생각이었다.

초기 서비스에 개발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아직 서비스가 무궁무진하였고, 그렇기에 서비스의 방향성 또한 많이 열려있었다. 나는 퇴근하고 나서도 서비스를 수시로 들여다보면서 어떤부분을 어떻게 발전시킬수 있을지 생각했다. 다른 서비스를 볼때도 우리 서비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스포츠 관련 서비스였는데,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나였지만 이런나도 즐겁게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에 대해서 고민하기도하고 실제로 계정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발견한 에러나 불편한점, 개선하면 좋을 점들을 정리해서 매일 아침 출근하면 사수님에게 피드백을 구했다.

대부분은 반려되었지만 그래도 이정도로 몰두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회사가 나를 많이 믿어주었고 사수님도 열려 계신분이라 자유롭게 생각을 하고 건의할 수 있었고 그런 분위기가 나를 더 몰두하게 만들었던것 같다.

실패한다는것

개발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돈이 많이들거나 시간이 많이들어서 못하는것뿐이지 구현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푸시알림을 구현하면서 불가능한것도 있구나 처음 느꼈다.

PWA에서 aab를 추출하여 플레이스토어에 출시한 앱이 있었다. 이 앱에서는 웹푸시가 동작하고 있었는데, 이걸 앱푸시처럼 보이게 해달라는 요구사항이었다. pwa builder 설정을 이리저리 수정하며 테스트를 해보았지만 1주, 2주가 지나도록 해결이 되지 않았고 배포가 되어야 테스트가 가능해서 더 시간이 오래걸렸다.

결국 3주가 지나서야 불가능하다고 결론 짓고는 pwa builder 개발자에게 문의를 남겼다. 우리가 구현한 방법으로는 앱푸시처럼 나타나는게 불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왜 진작 문의하지 않았을까 후회와 함께 그동안의 시간이 많이 아까웠지만 불가능한 업무도 존재하고, 일을 시작하기 앞서 가능여부부터 확인해야한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미적감각

폰트가 깨진것을 알아차리거나 미묘한 색감차이를 발견하여 디자이너분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내가 미적감각이 있구나를 느꼈고 이를 사용자 경험에 많이 녹여냈다. 다른 부분을 많이 발견하여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동일한 경험을 하도록 기여했었다.

오래일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사수와 나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1년정도 차이가 났는데 계속 일하면서 점점 실력이 비슷해지다못해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담당했던 인턴이 800줄짜리 엉터리 코드를 작성해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사수님이 회의실로 불러서 페어프로그래밍으로 2시간만에 해결한 것을 보고 이게 바로 경력에서 나오는 문제해결력인가? 감탄했다.

나도 일하는 시간이 오래되면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처음 입사해서는 기능 구현에 치중하며 얼마나 더 잘 구현할지에 집중했지만 시간이 흘러서는 기능의 맥락을 보게 되었고 이 기능으로 인해서 어떤 가치를 주는지 찾고 그것에 맞는 구현 방법을 찾아보게 되었다. 또한 기획안을 검토할때도 단순히 구현 가능성을 넘어 아키텍처에 끼칠영향도 함께 고려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실력의 성장은 점점 더디게 되었지만 시아는 넓어져서 더 많은 것을 고려하게 되었다.

함께 성장하는것의 중요성도 알게되었다. 개인의 성장에 한계를 느꼈다기보다는 함께 성장할때의 시너지가 대단했다. 각자 잘하는 분야가 다르듯 코드리뷰를 진행하더라도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리뷰를 하여 새로운 접근에 대해서 알게되었다. 회고때는 각자 겪은 시행착오를 공유하여 다른 개발자가 같은 문제를 겪지 않고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하게 되어 좋았다.

회사에 아쉬운 점

단지 나와 맞지 않는 회사

처음에 퇴사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회사의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는 잘못이 없었다. 그냥 회사의 성장단계와 내가 추구하는 바가 맞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고 나는 계속 개선하기를 원했다. 나는 우리회사가 네카라쿠배가 될수 있다고 믿으며 우리만의 서비스를 만들었으면 했지만 회사는 큰 회사를 따라가서 그들이 고민한 시간에 편승하기를 원했다. 3일동안 디자이너분과 함께 고민하면서 결정한 시안이 아닌, 대기업의 것을 차용하기로 결정되었을때는 합리적인 결정이었지만 많이 아쉬웠다.

차등이 없는 회사

그리고 좀더 치열하게 일하기를 원했던거 같다.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이기려면 더 열심히해야할거 같은데 칼퇴를 장려하고 업무에 정해진 기한도 없으며 성과 인정이 하나도 안되니 열심히 하는 사람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 모든게 합쳐지자 서비스의 발전 속도는 매우느렸다. 오래 다니기에 좋은 회사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아쉬운 회사였다.

그냥 이런 유형의 회사도 있는 것이고 단지 나와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

회사를 벗어난 나는

그동안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편하게 일했다. 이제는 채용시장에서 내가 어떤 가치와 위치를 갖는지 객관적으로 가늠할 필요가 있다. 주니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치열한 성장을 위해, 단순히 업무량이 많은 곳이 아니라 회사의 발전을 위해 똑똑하게 일하는 환경에서 경험을 쌓고 싶다.

또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취업 준비를 하는 만큼 기초를 튼튼히 다지고 싶다. 자바스크립트와 리액트의 동작 원리를 깊이 탐구하며 기반을 단단히 쌓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조언

떠나기 전, 사수님께 앞으로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부탁드렸다. 나를 가르치며 느낀 점을 솔직히 말해달라고.

돌아온 피드백은 "싫은 소리를 잘 못하고 금방 떠날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이었다. 곱씹어보니 맞는 말이었다. 매일 함께하는 동료들과 마찰을 피하려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넘어간 경우가 많았다. 물론 선을 넘는 부탁에는 거절했지만, 그 기준이 높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극적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내가 풀어야할 숙제인것 같다.

회사 나간것에 대한 후회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몇몇 분들은 경기가 좋지 않으니 조금 더 다니다가 옮기라고 조언해 주셨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당분간 경기가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결심했을 때 움직이지 않으면 평생 못 나올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어려운 채용시장에서 쉽게 취업하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회사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면접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AI 시대에 프론트엔드는 어떤 위치에 있을지... 불안하지만 값진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장에서조차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더 빠르게 발전할 AI 시대에는 쉽게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욱 단단히 준비하고 싶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